트래버스 아이소픽스 브라켓 설치 1열(앞좌석) – ISOFIX브라켓

아이소픽스 (ISOFIX)

차량에 유아시트를 완벽하게 부착하는 기능으로

안전벨트보다 안전합니다.

ISO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정해놓은 FIX(고정) 방식으로

2010년 이후 생산된 대부분의 국내 자동차에서

기본 사양으로 장착이 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카시트를 유아시트의 부착구에 밀착하여

직접 차량에 고정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안전하게 아이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ISOFIX (쇼핑용어사전)

*일부 수입차 및 르노삼성자동차 는

2010년 이전 모델도 isofix 적용되어 있는 경우 있습니다.

차량에 카시트를 고정하기 위해서는

차량,카시트 각각 ISOFIX 가

장착되어야 설치가 가능합니다.

차량에 ISOFIX가 없을시 #아이소픽스브라켓

카시트에 ISOFIX가 없을시 #래치벨트 , #테더벨트

를 이용하여 장착 가능합니다.

 

ISOFIX브라켓 사용시 차량 안전벨트와 함께 사용하심을 권장합니다.

 

팜넷 에서 판매하고 있는

아이소픽스브라켓 은 A타입, B타입,C타입,SM전용

으로 4종이 있으나

차종에 맞춰 세부적으로 총 6종 의 브라켓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주문시 차량,연식,설치할좌석 을 꼭 남겨주세요.

차종에 맞춰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습니다.

 

 

팜넷 아이소픽스브라켓 은 전제품 국내에서 제조되고 있습니다.

대우자동차 를 인수하여 국내에서도 매우 친숙한 브랜드인

쉐보레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특히 픽업트럭 및 SUV 로 유명합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 SUV 트래버스

넓은 실내공간및 활용성으로 아빠들의 로망인 차량이줘

출력:310hp

토크 36.8kg.m

엔진 v6 3,564cc

구동 AWD

변속기 9단자동

조용한 가솔린 v6 엔진에 300마력이 넘는 넉넉한 출력까지 갖춘 AWD 구동형태의

대형 SUV 로 패밀리카로 각광받는 차량입니다.

2열(뒷좌석) 은 isofix 가 기본적용

1열(앞좌석) 은 팜넷 isofix브라켓 B타입으로 간단히 설치 가능

시트 후면 하단 부직포 커버 밑으로 손을 쭉~ 넣어보면

간단한 고리형태의 클립이 있습니다.

좌,우 각 1개씩 총 2개의 고리를 앞쪽으로 밀어 분리해주세요

후면 하단 부직포커버를 위로 들처올리면

시트의 엉덩이판과 등판이 만나는부분!

그 틈으로 브라켓 삽입

테더벨트 고리가 위로 향하게 설치하심을 권장합니다.

브라켓을 넣고 시트 앞쪽으로 위치하여

엉덩이판과 등판사이틈으로 브라켓 위치 확인

브라켓과 함께 보내드리는 가이드를 걸어주면 설치끝

가이드는 밑에서 위로 걸어서 고정하는 형태로

가이드 설치는 조금 빡빡하게 설치되는게 정상입니다.

가이드 사이로 브라켓 위치 확인후 시트 후면 커버 원복하면 설치 완료

 


 

쉐보레  (namu.wiki 발췌)

제너럴 모터스 산하 자동차 브랜드로, 포드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다.

본사는 미국 미시간 디트로이트에 위치한 제너럴 모터스 소유의 마천루인 르네상스 센터(Renaissance Center)에 자리잡고 있으며, 대한민국 시장에선 인천광역시 부평구에 위치한 GM 한국사업장

통해 개발 및 생산, 판매가 진행되고 있다.

애칭은 셰비(Chevy)이며, 엠블럼은 나비 넥타이를 상징화한 것으로 일명 쉐보레 보타이(Bowtie)라고 불린다.

 

1911년, 윌리엄 크레이포 듀런트(William Crapo Durant)와 루이 셰브럴레이(Louis Chevrolet)가 합심하여 자동차 회사를 세운다. 사명은 당시 레이서로 명성이 높았던데다 발음하기 쉬웠던 셰브럴레이의 이름에서 따와 ‘쉐보레 모터 컴퍼니’로 결정했고, 첫 차량으로 4.9L 6기통 엔진을 얹은 고급 승용차 ‘클래식 식스(Classic Six)’를 선보였다. 클래식 식스는 시장에 나오자마자 정교한 완성도와 좋은 주행질감으로 호평을 받았고, 쉐보레는 창립과 동시에 시장에서 주목받는 브랜드로 올라선다. 자동차 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한지 불과 20년 정도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창립자는 갈등을 겪는다. 사업적인 부분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도 탁월했던 듀런트가 포드 모델 T의 성공을 지켜보며 쉐보레 또한 보급형 차량에 주력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모터스포츠에 진심인 셰브럴레이는 이러한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던 것. 하지만 어찌저찌해서 1915년에 첫 4기통 모델인 H시리즈가 양산됐고, 저렴한 가격으로 포드 모델 T와 정면승부를 벌이며 결과적으론 듀런트의 선택이 쉐보레의 판매량 증대에 큰 도움을 주었다. 물론 셰브럴레이의 입장도 아예 무시받진 않았기에 1917년엔 첫 V8 엔진을 양산하는 등 고성능 포트폴리오도 꾸준히 확장시켜 나간다. 이후 회사는 듀런트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1918년에 GM과 합병한 뒤, 단숨에 미국 2위 자동차 메이커가 된다. 승용차 외에 트럭을 비롯한 다양한 차량들의 생산도 개시했고, 유럽[2]과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도 적극적으로 공장을 세우며 이 때부터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GM에 인수된 이후엔 규모가 큰 거대기업답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전설적인 디자이너 할리 얼(Harley Earl)을 영입하며 ‘개인화’에도 초점을 맞췄는데, “모든 지갑과 모든 목적에 맞는 차”(a car for every purse and purpose)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회사 내에 치량의 미적 디자인을 책임지는 ‘아트 앤 컬러’ 부서를 신설했으며, 세계 최초로 구매자가 차량의 색상을 선택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생산의 효율성만을 고려하며 디자인과 색상엔 신경을 쓰지 않았던 당시의 포드[3]와 쉐보레의 격차를 큰 폭으로 벌렸고, 1927년엔 연간 생산량 100만대를 돌파하며 포드를 누르고 미국 1위 자동차 기업이 된다. 이외에도 세계 최초로 상용 차량에 6기통 엔진을 도입, 최초의 독립 서스펜션 개발, 선구적인 스테이션 왜건 차량을 개발하는 등 기술적 성장을 이뤄낸다.

대공황 시기에도 이러한 행보는 꾸준했다. 경쟁사가 파산 위기에 몰리는 와중에도 세계 최초의 ‘전륜’ 독립 서스펜션을 도입하는 등 기술적 투자를 아끼지 않았으며, 1935년엔 세계 최초의 SUV인 서버번을 선보이기에 이른다.

1950년엔 당시만 해도 극소수의 고급차에나 들어가던 자동변속기를 세계 최초로 보급형 차량에 장착해 운전의 과정을 한층 쉽게 만들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자동변속기가 주류로 자리잡는데에 크게 기여했으며, 전 세계적인 자동변속기 차량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고성능 차량의 개발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였는데, 재규어의 스포츠카를 보고 의기투합하여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보디를 비롯한 온갖 신기술을 때려박은 최초의 대중형 스포츠카인 콜벳을 내놓기도 했다. 몇 년 뒤엔 새로운 스몰블록 V8 엔진을 선보이는데, 우수한 성능과 간단한 구조에서 오는 견고한 내구성으로 인해 오늘날까지 수 많은 미국산 트럭과 스포츠카가 애용하고 있다. 이 시기 쉐보레는 NASCA나 NHRA 프로스톡 경기에서도 최상위권의 성적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다.

특유의 미국적이고 화려한 디자인 덕에 차량 자체의 인기도 좋았다. 세계대전 직후 미국 전역에 흘러 넘쳤던 낙관주의가 그대로 반영된 벨 에어나 임팔라 같은 명차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차량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영향력도 매우 컸다. 동세대 캐딜락 차량들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디자인의 대표적 예시로 꼽히기도 한다.

1960년대에 들어선 환경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던 당시의 추세에 따라 인기 승용차였던 코베어를 바탕으로 한 순수전기차인 일렉트로베어(Electrovair)를 선보였다. 초기 버전은 450V 아연 배터리와 67kW로 모터를 장착했으며, 후기 버전인 일렉트로베어 II는 532V 아연 배터리와 85kW 모터를 장착해 65~129km의 1회 충전 주행거리[4]를 선보였다. 1966년엔 도로 주행이 가능한 세계 최초의 수소연료전지차인 일렉트로밴(Electrovan)을 선보이며 기술 혁신을 이어나갔고, 파워트레인의 다각화 측면에서 선구자적인 연구를 시도했다.

1970년대에도 보잉사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꾸준한 전기차 개발에 나섰으며, GM 그룹 차원에선 NASA의 요청에 따라 아폴로 15호16호17호의 임무에 사용된 월면차를 제작하기도 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찾아오면서는 급속도로 발전한 일본 업체들에게 일부 승용차 수요를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으나, 역으로 일본차 업체들이 갖추지 못한 SUV/픽업트럭 시장을 적극 공략해 이 때를 기점으로 미국 시장에서 픽업트럭 만큼은 쉐보레가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져가게 되었다. 구형 브롱코와 함께 미국 남성들의 드림카로 자주 언급되며 마초 이미지로 대표되는 K5 블레이저나 C/K 픽업트럭이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차량이다. 1979년엔 쉐보레 브랜드의 총 생산량이 1억 대를 넘기는 대기록을 세웠다.

다만 모회사인 GM의 경영방식과 특유의 조직 문화로 인해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점차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시기 캐딜락올즈모빌폰티악과 마찬가지로 재무부 위주의 의사결정은 차량의 경쟁력을 되려 떨어뜨렸고, 개발 과정 중 자체 가이드라인을 이상하게 잡다보니 품질도 예전보다 떨어졌다. 더구나 승용차 시장에선 일본차의 영향력이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커져갔고, 쉐보레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미 시장에서 SUV와 픽업트럭을 제외하면 꽤 많은 모델들이 쓴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밥 루츠를 주도로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신흥국에선 한국의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며 어부지리로 얻게 된 일부 모델을 쉐보레 브랜드로 수출 판매해 수익성을 높였고, 승용 라인업은 디자인과 조립 품질, 주행 성능을 일본차와 대등한 수준으로 개선해나갔다. 기술 혁신 측면에선 주행거리 연장형 신개념 전기차인 볼트를 선보이는 한편, 꾸준한 수소연료전지차 연구를 진행하는 동시에 다양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갖춰 일본 브랜드에 대응하고자 했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도 생산기반을 확장해나가며 북미 외 다른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다시금 회복했다. 덕분에 당시 GM 내에선 그나마 좋은 성과를 보였고, 2009년 GM 파산 사태를 거치고도 다른 브랜드들과 달리 폐지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2010년대엔 본격적인 정상화에 돌입했다. 소형차와 SUV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한편, 카마로를 비롯해 아이코닉했던 차량들을 다시 부활시켜 브랜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재정립했고, 꾸준한 기술 투자를 이어나갔다. 2011년엔 창립 100년만에 연간 최대 판매량을 기록함과 동시에 브랜드의 총 생산량이 2억 1천만대를 돌파했으며, 2012년에도 전 세계적인 판매량 증가세를 이어나가 GM이 다시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데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2016년엔 당시 대중형 전기차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도입해 가장 긴 1회 충전 주행거리[5]를 자랑했던 순수전기차 볼트 EV를 선보여 2세대 전기차 시장을 개척, 기술 혁신을 이끌어 나갔다.

2020년대부턴 ‘모두를 위한 전동화’라는 GM 전사 차원의 슬로건 아래 전동화를 가속화 하는 한편, 저렴한 가격을 실현하고 슈퍼크루즈 시스템을 통해 자율주행 기능을 보급하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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