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의 역사 에 대해 알아보자
민족상잔의 대비극 6.25 전쟁이 끝난
1953년 부터의 자동차 산업을 정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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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차량제작 주식회사
(나무위키 발췌)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시발자동차
1995년 설립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제작
6,25전쟁으로 인해 국내에 많이 들어온 미군차량의 부품(엔진,미션등) 을 활용해
드럼통을 펴서 만든 바디를 얹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승용차 입니다
당시 국내기술이라는 장점으로 큰 화제를 모아 많은 인기를 얻었으나 이후
라이벌 ‘새나라자동차’에 주도권을 빼앗기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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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나라자동차
(나무위키 발췌)
1961년 5.16 군사정변이후 ‘자동차공업 보호 육성법’에서 비롯돼 새나라자동차 설립 배경이 되었다
당시 해외자본의 국내 투자라는 명목으로 재일교포였던 박노정에게 자동차 제조기업의 설립을 허가하여 1962년 정식으로 설립됐다
인천 부평구에 공장을 지어 일본의 닛산 블루버드 를 SKD(부분조립) 형태로 수입하여 조립 판매 되며 큰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특혜시비등으로 망한후 1965년 신진자동차에 인수합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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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자동차
(나무위키 발췌)
1955년 부산 전포동에 ‘신진공업사’ 를 설립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GMC,CCKW 폐차 섀시를 재생한 버스를 만들면서 자동차사업을 시작
1957년 신진자동차공업(주) 로 새로 출범하고 1960년 버스공장을 완공
1962년 신진H-SJ 25인승 마이크로버스를 출시하여 노랑차 혹은 마이클 이라는 애칭으로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
1963년 미군 지프 폐차 부품을 이용하여 일본의 닛산 블루버드 P310 의 외형을 모방하여 만든 신성호 라는 세단은 신진자동차 최초의 승용차였으나
재생부품을 사용하다보니 어쩔수 없이 조악한 품질과 특유의 수작업 공정 때문에 경쟁업체인 새나라자동차 보다 비싼 가격으로 판매했기에 매우 부진하였다
1965년 새나라자동차 인수후 일본의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제휴등을 협상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본 토요타와 기술제휴로 코로나(1966년), 크라운(1967년), 퍼블리카(1967년) 를 제작하여 판매, 특히 코로나는 1960년대 한국의 도로사정에 잘 맞는 승용차로
국내 시장을 싹쓸이 하였다
1966년 일본 토요타 와 기술제휴해 FB100LK 버스(가솔린) 를 생산. 이는 폐차 재생부품이 아닌 새부품을 사용하여 만든 국내 최초의 대량생산버스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시내버스로 유명했으며, 1968년 내놓은 DB102LC 버스(디젤) 는 본격적으로 국내 디젤엔진 버스 시대를 개막한 차량으로 1970년대 초반 가장 흔한 버스중 하나였다
버스외 토요타,히노 와의 기술 제휴로 중대형 트럭도 만드는등 그야말로 한때나마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을 싹쓸이 하던 회사였다.
1966년 신진자동차판매 를 세우고 1968년 서울 양평동에 신진자동차운전학원 을 세웠으며
1969년 경향신문을 인수하고 1975년 하동환자동차(동아자동차)까지 인수하는등 1970년대 초반까지 다양한 그룹사를 형성하였다
허나 당시 독과점의 폐해와 그로 인한 폭리를 취하고 1969년 적자투성이 었던 한국기계공업을 안후 하고 ,
토요타가 진국진출을 노리며 철수하며 결국 1971년 미국 GM과 손잡고 부평공장을 GM코리아(새한자동차) 로 분사시켰으나
1972년 출시한 시보레 1700 은 경쟁모델에 비해 연비가 매우 좋지 않았고 포장도로용으로 설계되어 당시 국내 상황과 맞지 않아 당시 업계 선두를 현대에 내 줄 수밖에 없었다
경영악화로 1976년 한국산업은행 관리로 법정관리받고 각 계열사는 뿔뿔히 분사되는데 모기업인 신진자동차공업은 1970년 미국 AMC 와 기술제휴를 하여
지프만을 만들다가 1974년 지프 사업부를 신진지프자동차공업주식회사 로 분사 되었고
후신인 동아자동차(하동환자동차),새한자동차(GM합작 ),거화(신진지프자동차) 중
거화(신진지프자동차) 는
1984년 동아자동차에 인수되었으나 동아자동차는 거화를 무리하게 인수합병한 것이 화가 되어 훗날 쌍용그룹에 인수되는데 이리하여
쌍용자동차 가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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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자동차
(나무위키 발췌)
1972년 신진자동차와 GM의 합작사인 GM코리아 로 설립되었으나 이후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신진자동차측 지분을 넘겨받아 최대주주가되며
새한자동차를 출범하였다
1977년 대한민국 버스산업 역사의 전설로 평가되는 BF101을 출시
1978년 대우그룹에 매각 1983년 경영권 협상이 마무리 되고 법인을 그대로 승계하여 후신인 대우자동차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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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현 쉐보레)
(나무위키 발췌)
1976년 신진그룹은 부도가 나고 산업은행이 GMK(General Motors Korea) 의 한국측 지분을 넘겨받아 새한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이후
1978년 대우그룹에게 인수되었다.
기존 판매되던 레코드 1900 을 레코드 로얄 로 이름을 바꾸고
이스즈 벨렛의 후속 차종이자 시보레 1700의 후속으로 제미니를 출시
하지만 제미니 역시 현대자동차 포니를 이길수는 없었다. 이후 1982년 맵시로 바뀌어 출시된다.
반면 레코드는 승승장구해 1970년대 중형차 시장을 장악했고 이후 1980년 로얄살롱을 내놓고 되는데 , 운좋게 2차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장관급 관료의 관용차가 4기통으로 제한되면서 경쟁모델을 크게 앞지를 수 있었다.
또한 버스 부문에서 새한자동차 시절 희대의 명작이라 불리던 BF101 는 경쟁사의 버스 모델을 압도하는 판매량을 보였다.
[이시기 대우자동차가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중 한가지는 MAN(독일) 기술협정을 통해
국내에서 위탁생산(OEM) 을 받으며 기존 BF101 이나 BV101에 탑재되었던 185마력 엔진에서 잔고장이 적은 MAN엔진(236마력)이 탑제되며 정비관련 비용을 크게 절감할수 있게 되었으며
도로사정이 나쁜 낙후지역에도 뛰어들수 있게 되었다.]
GM과의 수년간의 경영권 협상끝 대우그룹에서 경영권을 넘겨받아 1983년 상호를 대우자동차로 바꾸게 된다. 같은해 부평공장에 기술연구소를 헤우고
1985년 긴급출동 서비스를 실시하는등 발전에 열을 올렸으나 GM의 지분은 그대로여서 대우 르망등 GM 계열의 차량을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생산했다
1992년 GM 과의 합작관계를 청산하고 1993년 대우자동차판매 로 판매망을 넘겼다
1994년 1995년 버스와 상용차 부문을 각각 대우중공업에 이관시킨후 1996년 전라북도 군산종합자동차공장을 세운다
냉전종식후 시장경제 체제로 진입하기 시작한 동유럽 국가들과 남미등을 중심으로 판매법인을 속속들이 세운후 1995년 폴란드 FSO 와 체코 AVIA 를 각 인수하며
해외공장들을 설립했다
1993년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합작해 우즈대우-아브토 를 세우고
1995년 베트남에 현지법인 비담코를 세운웠고 인도의 DCM-토요타 를 인수했으며 영국IAD사로부터 워딩연구소를 인수,독일 뮌헨연구소설립등
해외진출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로얄 시리즈가 현대자동차 쏘나타 에게 중형차 1위 자리를 내주며(1991년 단종) ,내수시장에서 현대자동차에게 점차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대우자동차 자체의 문제도 있었으나 GM의 문제도 있었다.
GM의 글로벌 차량을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생산함에 따라 차량 차체의 성능은 나무랄데 없었으나 국내시장의 수요와 좀 맞지 않는 차량을 출시하게 됨으로 국내시장에서 점차 외면당하게 된것이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자 1992년 GM지분을 인수후 GM과 결별하고 해외 엔지니어링을 통해 독자모델 개발에 전력을 기울인다
GM과 결별후 개발된 차종으로 소형 라노스(1996년), 준중형 누비라(1997년), 중형 레간자(1997년) 이 출시되었으며 준대형,대형은 브로엄, 아카디아 를 들여와 판매하였다
대우자동차의 중형세단의 대표였던 프린스는 튼튼한 차체에 후륜구동 그리고 저렴한 유지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편의성을 내세운 쏘나타를 따라잡지 못하였으며,
최고급”중형세단”브로엄은 슈퍼살롱이라 불리웠으나 프린스와 차별화에 실패로 판매부진을 겪었고
혼다자동차의 레전드를 국내 도입해 아카디아(3200cc) 를 내놓았으나 현대자동차의 그랜져에 밀려 지지부진 하였다.
1998년 대우자동차는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였으며
당시 잘나가던 쌍용에서 벤츠의 E클래스를 기반으로 개발한 체어맨을 판매하게되며 아카디아는 단종되었다.
당시 패밀리룩 개념으로 특유의 삼분할 그릴은 소비자들에게 호불호가 강했다
이후 체어맨,코란도등도 삼분할 그릴을 적용…
1997년 IMF 사태가 터진후 쌍용자동차 인수하여 재계2위의 재벌이 된 상황이었으나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대응과 막대한 부채로 인해 어려움에 빠지게된다.
결국 1999년 모기업인 대우 본사가 워크아웃을 당하게 되고 12월들어 정부는 대우차 및 쌍용차를 해외에 매각하겠다고 방침을 밝히게되었고
이후 노조 대표자들의 긴급회의후 대우차의 공기업화를 목표로 정하고 재벌및 해외매각반대 투쟁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0년 3월 본사 노조가 먼저 파업을 개시 이후 4월 쌍용차 노조도 공동파업을 전개하였다
미국의 포드자동차 가 대우차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으나 포기함에 따라 11월 최종 부도처리되어 법정관리 상태가 된다.
이로써 약 4500여명의 정리해고가 통보되고 노조의 반발로 많은 충돌이 발생하였다
2002년 승용차 사업부문은 GM에서 인수하여 GM대우로 사명이 바뀌었고 , 버스사업부문은 영안모자가 인수하여 자일대우버스가, 트럭사업부문은 타타그룹에서 인수하여
타타대우상용차 가 되었다.
부평공장은 GM이 인수를 보류하는 바람에 차량,엔진등을 GM대우에 납품하는 형태의 대우인천자동차 라는 별도 법인으로 한동안 운영되다
2005년 GM대우에 통합되었다.
이후 대우자동차법인은 잔존법인이 되어 청산절차를 밟았으며 대우자동차판매의 쌍용자동차 판매를 중단하였으며
이후 GM대우는 한국GM 으로 사명을 변경하여 대우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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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국민차
대우조선공업의 경형자동차사업부의 명칭으로 자력개발을 원했던 대우자동차가 GM의 간섭을 피하고자 별도의 사업부를 신설
1991년 창원에 공장을 준공하여 티코,다마스,라보 를 생산하였다
1994년 대우조선이 대우중공업에 합병되어 한동안 대우중공업에서 만들다가 1999년 3월 상용차,버스 부문과 함께 대우자동차에 흡수합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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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자동차
(나무위키 발췌)
1962년 국가재건방안의 일환으로 국내 자동차공업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제정,공포한 자동차공업 보호 육성법에 기인해
1965년 설립 1969년 광주공장 준공후 동국제강에 매각
1975년 정부로부터 방위산업체로 지정된 이후 기아산업에 인수되었고, 특수차량 단독생산업체로 지정되 군용 지프나 KM900 경장갑차 등을 만들었다
1970년 피아트 124 를 선보였는데 이는 현대자동차가 포드 20M 모델을 선보인것보다 1년 뒤었으나 그 내구성이나 경제성, 그리고 당시 중상류층이 선호하던 보수적인 외관으로
단번에 신진자동차 코로나, 현대자동차 코티나 와 더불어 당시 국내 자동차 시장의 강력한 3각 경쟁구도를 이루었지만 피아트와의 계약 문제로 불과 3년만에 단종되었다.
그대신 기아산업에 인수된후 피아트의 상위 모델인 피아트 132를 들여와 1981년까지 생산하였다.
1971년 일본 미쓰비시 후소와 기술제휴로 B905N 버스를 생산했고, 이후 피아트 제휴로 P9 AMC 일반버스를 만든후 이듬해 P9 AMC 8톤 트럭까지 만들어 대형자동차 메이커로 만들 기반을 마련하였다
기외에도 미쓰비시 후소 로 부터 T951 트럭 을 완제품으로 소수 수입하기도 하였다.
1980년 2차 오일쇼크 이후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로 승용차 생산은 현대자동차와 새한자동차 가 , 중’소형 트럭 생산은 기아자동차가 독점 하게 되었으며 이는 1986년까지 지속되었다
1986년 자동차 합리화 조치 해제 이후 기아자동차도 승용차를 개발하지만 이는 기아자동차의 브랜드로 판매되었고
아시아자동차는 군용 차량과 대형버스, 트럭을 계속 생산해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였으며 1984년 소하리 공장에 있던 기아 복사(트럭) 생산라인도 이관받으면서
처음으로 기아차종도 위탁생산 했다.
1990년대 SUV시장을 독점하던 쌍용자동차 이외의 회사에서 처음 내놓은 SUV 인 록스타를 출시
1993년 프라이드를 위탁생산 하기도 하였으며 아시아자동차는 다시 승용차 시장에 재진입을 시도하며
모기업인 기아자동차와 되도록 중복되지 않는 틈새시장을 노리고자 했다.
1997년 아시아자동차도 기아와 동일한 로고를 달고 아시아자동차판매(주)를 세워 독자 판매망을 구축하려 했으나, 기아그룹의 자금난으로 부도유예협약 대상업체로 선정되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타우너,토픽,레토나의 판매권을 기아자동차로 넘긴뒤 대형차량 판매/생산과 군용차량 납품에 주력했고, 1998년 결국 모기업인 기아자동차와 함께 두기업 모두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
현대자동차와 합병이후 기아자동차의 모든 차량은 기아자동차 브랜드로 명맥을 이어오다 현대자동차 주도의 라인업 재정비로 인해 단종되었다.
아시아자동차에서 생산했던 차량중 현재까지 생산되어 출시되고 있는 모델은 1994년 출시된 대형버스 그랜버드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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